늙어 가다 (750)
2023년 6월 11일 새벽 1시 50분이 다 되었다. 며칠 전에 9천 원짜리 손목시계가 멈추었다. 사실 핸드폰이 있으니 손목시계가 있으나 없으나 별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냥 시계 없이 지내볼까 했는데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마음이 불편했다. 오래된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손목시계가 없으니 왠지 어색했다. 왼손의 손목에 항상 있던 것이어서. 사실 내게는 손목시계에 대한 로망 따위는 전혀 없다. 비싼 손목시계도 많이 있다고 하지만, 내게는 그냥 손목시계이기만 하면 된다. 잃어버린다고 해도 부담 없고, 중간에 고장 나면 미련 없이 버릴 수 있는 그런 손목시계.
이 손목시계를 산 지 2년이 넘었다. 애초에 수명을 1년 정도 예상했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오래 버티었다. 어느 날 이 시계가 멈추면 1만 원짜리를 새로 살 생각이었다. 그러다가 며칠 전에 결국은 멈추었다. 배터리 파워가 다 소진된 탓으로 보인다. 요즘 전자 손목시계의 구조는 비교적 단순해서 기계적인 고장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수은 전지만 갈아 끼우면 된다. 그런데 사실 수은 전지를 한 번도 갈아 끼워 본 적이 없다. 아주 오래전에 시계포에 가서 수은 전지만 바꾸었는데 8000원을 준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도 1만 원 남짓 하는 손목시계였는데.
그런 경험이 있어 8000원을 주고 전지를 갈아 끼우느니 그냥 1만 원짜리 시계를 새로 사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1만 원짜리 시계가 제법 많이 있다. 그래서 그중의 하나를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다. 그러다가 그냥 심심해서 멈춘 시계의 뒷 뚜껑을 열어보았다. 어차피 버릴 것이니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아주 조그만 수은 전지가 있고, 규격이 적혀 있다. 글자 크기가 너무 작아서 맨눈으로는 읽을 수가 없었다. 돋보기를 대고 읽어 보니 SR626SW라고 되어 있다. 드라이버로 밀어내니 의외로 쉽게 빠졌다. 이 규격의 수은 전지만 있다면 나도 갈아 끼울 수 있지 않을까?
갑자기 모험심이 발동했다. 인터넷으로 이 규격의 수은 전지를 찾아보았다. 쉽게 찾을 수 있었다. 1개 가격이 380원이라고 한다. 세상에. 수은 전지 가격이 이렇게 싼 줄 전혀 몰랐다. 380원이라니. 오래전에 1분 수고에 8000원을 지불한 것이 갑자기 아까워졌다. 1분 인건비로 7000원을 준 셈이다. 수은 전지를 바로 주문했다. 시간도 많은데 2~3일 정도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 배송료가 3000원이다. 배송료가 물건 값의 8배이다. 하지만 그 정도 배송료는 기꺼이 지불해야 한다. 바로 문 앞까지 가져다주지 않는가? 더 이상 편할 수가 없다.
드디어 실전. 뒷뚜껑을 열고 수은 전지를 꺼내고 새로 산 수은 전지를 넣었다. 2분도 안 걸렸다. 시계가 움직인다. 옛날 시계처럼 무수한 톱니바퀴로 움직이는 시계가 아니다 보니 기계적인 고장은 아닐 것으로 생각했었다. 예상대로 배터리 파워가 없어서 멈춘 것이다. 손목시계를 다시 사지 않아도 된다. 장바구니를 비워 버렸다. 이 손목시계는 적어도 1년은 무리 없이 작동할 것이다. 1만 원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어서 기쁜 것이 아니라, 일생 처음으로 수은 전지를 갈아 끼울 수 있었다는 것이 기쁘다. 막상 해 보니 정말 쉬운 일이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런 저런 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늙어 가다 (752) (0) | 2023.06.13 |
---|---|
늙어 가다 (751) (0) | 2023.06.12 |
늙어 가다 (749) (0) | 2023.06.10 |
늙어 가다 (748) (0) | 2023.06.09 |
늙어 가다 (747) (0) | 2023.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