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가다(13)
연필을 사용한지 꽤 오래 되었다. 젊어서 샤프펜슬이라는 것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내 정서에는 맞지 않았다. 칼로 조심스럽게 연필을 깎는 그 시간이 좋다. 아주 짧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그 짧은 동안에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자주 손을 베이게 되면서 연필깎이로 옮겨가게 되었다. 손으로 돌려서 사용하는 수동식으로 입문했었다. 손으로 돌려야 하는 그 시간이 나름 의미 있었다. 그 짧은 시간에도 뭔가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자동 연필깎이에 맛을 들였다. 순식간에 깎아버리는 그 편리함. 나이드니 그것이 편했다. 하지만 연필을 깎으면서 누렸던 그 잠깐의 여유가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한꺼번에 여러 자루 깎기. 십여 자루를 한꺼번에 깎으면 이전에 수동식 연필깎이에서 얻었던 그 시간이 생긴다. 그런데 자동 연필깎이를 사용하다보니, 연필 끝이 조금만 무뎌져도 바로 깎아버리는 버릇이 생겼다. 칼이나 수동식 연필깎이를 사용할 때는 연필 끝이 조금 무뎌져도 참았는데, 자동 연필깍이를 사용하다 보니 참아지지가 않는다. 마음이 간사(奸邪)해진 탓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