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일

늙어 가다 (508)

지족재 2022. 9. 11. 05:38

늙어 가다 (508)

 

2022년 9월 11일 아침 4시 50분이 다 되었다. 9월도 벌써 중순으로 들어서는 중이다. 추석 연휴를 바쁘게 보내고 있다. L 선생 글을 읽고 있다. 11월까지는 다 읽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일에 집중하다 보니 마음이 바쁘다. 이번 겨울에는 마무리를 지었으면 좋겠다. 은퇴하고 1년이 지났는데 계속 붙잡고 있을 수도 없고. 그냥 Y 선생에게 넘기고 왔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들기는 한다. 그러면 나는 편하겠지만 Y 선생도 L 선생도 편치 않을 것 같았다. 아무튼 맡기로 했으니 끝날 때까지 계속할 수밖에 없다.  

 

+++

 

1984년 2학기가 되었을 때이다. 논문을 쓰고 1985년에는 꼭 졸업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Piaget의 그 책을 다시 들여다보았다. (Inhelder, Piaget 순서로 되어 있으니 Inhelder가 주 저자일 것이다.) 어찌어찌 다 읽고 나서 W 선생님과 상의 없이 80쪽 정도의 Draft를 들고 1985년 2월쯤에 W 선생님을 뵈러 갔다. W 선생님께서 Draft 검토 후에 연락을 주신다고 하셨다. 사실 그전에 W 선생님과 몇 번 만나기는 했지만,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일을 겪고 나서 일단 Draft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W 선생님이 Draft를 보시면 내가 하려는 것을 잘 아실 것으로 생각했다. 

 

의도가 성공한 것 같았다. W 선생님으로부터 논문 작성을 official 하게 진행하자는 연락이 왔다. 하지만 W 선생님이 새로운 것을 요구하셨다. 일본어 문헌을 주시면서 그것을 읽고 논문에 반영하라고 하셨다. 당시의 나는 일본어를 볼 능력이 없었다. 일본에서 공부하신 W 선생님은 능력자이었지만. W 선생님이 하신 말씀은 단순했다. 한자 알고, 조사 알고, 사전만 찾으면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지만 그 일본어 논문을 가지고 돌아섰다.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일한사전을 구하고, 일본어 조사를 공부하기 위해 종로의 일본어 학원에 한 달간 다녔다. 

 

기본 한자 정도는 알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W 선생님이 주신 일본어 문헌에 읽지 못할 정도의 어려운 한자는 나오지 않았다. 조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약간의 문법도 알게 되었다. 특히 동사의 어미변화를 알 수 있었다. 한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편했다. 그렇게 일본어 문헌을 읽고 W 선생님의 의중대로 논문에 반영할 수 있었다. 사실 그 뒤로도 몇 개의 일본어 문헌이 더 추가되었다. 그렇게 논문을 작성하고 무사히 심사도 끝낼 수 있었고 1985년 8월 말에 졸업도 할 수 있었다. 가장 큰 소득은 부족한 대로 일본어 문헌을 그럭저럭 볼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졸업을 하기는 했지만 그렇게 기쁘다는 생각이 든 것은 아니고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은 다 졸업하는 판에 혼자서 졸업도 못하고 있으면 그것도 창피한 일 아닌가? 아무튼 그런 창피함을 덜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었다. 졸업했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달라지는 것이 있기는 있다. 졸업했으니 1급 정교사가 될 수 있고, 따라서 연수를 받으러 가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1급 정교사로 발령받기도 전에 대학로의 그 학교를 그만둘 일이 생겼다. 전혀 내가 의도하지도 않았던 일이다. 대학로의 그 학교에 온 것처럼 다시 한번 나도 모르게 인생행로가 바뀌게 되었다. 

 

졸업 후 얼마 되지 않은 1985년의 9월 어느 날 오전에 W 선생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당시에는 전화가 교감 선생님 책상 위에 딱 1대 있을 때이다. 교감 선생님이 전화를 받아서 해당 선생을 부르면 그 앞에 가서 전화를 받았다. 그러니 긴 이야기를 할 수도 없었다. W 선생님이 생각해 보고 그날 중으로 Yes 아니면 No로 답하라는 것이었다. 연구소에 자리가 났으니 갈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연구소에 그날 당장 결정하라니. 고민은 되었다. 안정적으로 살고 있는데, 공무원 자리를 버리고 갑자기 진로를 바꾸어도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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