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가다 (585)
2022년 12월 8일 아침 4시 50분이다 다 되었다. 뉴스에 보니 입대한 지 얼마 안 된 이등병이 죽었다고 한다. 군에서는 자살이라고 하는데, 총기 사고로 죽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나이도 얼마 안 되었는데 안타깝다. 멀쩡하던 아들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부모 마음은 어떻게 해도 위로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요즘에도 군대에서 자살하는 일이 생기다니. 내가 군대에 근무하던 1981~1983년에도 이미 군대가 좋아졌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사실 그 시절에 나의 군대 생활이 편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견딜 수 없던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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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군대는 40년 전의 군대와는 완전히 다르다고 들었다. 입대한 사병이 터무니없는 대우는 받지 않는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군대 생활이 살기 싫을 만큼 힘들었을까? 모를 일이다. 군대에서 가혹 행위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전방 초소이니 총알이 장전된 총기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후방에서 근무했다. 나와 같은 후방의 군인을 위해 육본에서 전방 초소에서 1박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1982년 10월쯤으로 기억한다. 육본에 집합해서 전방까지 육본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 전방 어디인지는 모르겠다. 버스에서 내려 한참 동안이나 산길을 올라가니 초소가 나왔다. 사방을 둘러보니 산밖에 보이지 않았다.
외부에서 온 손님 사병이라서 그런지 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 당시 전방의 군인들은 매우 힘든 생활을 하는 것을 보았다. 낮에는 한참을 내려가서 부식을 짊어지고 올라와야 했다. 그리고 밤에는 초소에서 경계 근무를 서야 했다. 낮에 도착해 내무반을 둘러보니 밤을 꼬박 새우며 근무한 사람들이 자고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생활이 고달프기는 하지만 내무 생활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다고 했다. 철책 넘어 북한 초소가 보였다. 춥다는 말을 들어서 월동 준비를 단단히 하고 갔었다. 내복에 야전잠바까지 완전히 갖추어 입고 갔었다. 10월이었는데 밤이 되자 정말 추웠다.
현지 부대원 한 명과 조를 이루어 밤 근무를 나갔다. 초소는 옛날 공중전화 박스 2개 정도의 크기였다. 앞이 열려 있었다. 그러니 밤바람이 그대로 들아왔다. 난방 기구 같은 것은 없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다. 벽에 기대어 서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얼음 덩어리나 마찬가지였다. 냉기가 그대로 살로 전해져 왔다. 북한 쪽은 깜깜했다. 우리나라 쪽은 철조망을 따라서 불을 환하게 켜 놓지만, 북한은 아주 이따금 불이 들아왔다가 곧바로 나갔다. 그렇게 깜깜한 데서 어떻게 근무를 하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떨면서 초소 근무를 경험했었다.
지금도 GOP라는 말을 들으면 그때 그 생각이 난다. 지금은 군인들이 부식을 짊어지고 올라가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제대 후에 어떤 방송에서 케이블카를 이용해서 부식을 옮긴다는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는 전부 지고 날라야 했다. 길이 아닌 곳은 다니면 안 되다는 말도 들었다. 지뢰가 있을지 모른다고. 40년 전의 이야기이다. 지금은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다. 옛날처럼 육체적인 고생은 좀 덜 하도록 개선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군대에서 생활하는 동안에 가장 군대다운 경험을 했던 곳이라 기억이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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