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가다 (512)
2022년 9월 15일 오후 5시 40분이 지났다. 다행히 외장하드는 잘 복구될 것 같다. 오늘 연락이 왔다. 생각보다 비용이 꽤 비싸다. 40만 원이 넘는다. 그 정도가 적정 가격인지 잘 모르겠다. 잘 복구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큰 실수를 했으니 돈으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여전히 업체에 대해서는 미심쩍은 부분이 있어, 복구가 완료되면 업체에 가서 잘 복구되었는지 확인한 다음에 결제를 하기로 했다. 결제를 먼저 해야 복구를 진행한다고 해서 깜짝 놀랐다. 복구를 하고 나서 어느 정도 복구되었는지 확인한 후에 돈을 받아야 정상 아닌가? 안전 결제도 아닌데.
업체에서는 어느 정도 복구가 되는지 말을 하지 않는다. 100% 복구가 된다는 것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당산동에 있는 업체인 줄 알았는데 용산에 있다고 한다. 당산동에 있는 것은 보안업체라 방문이 안된다고 한다. 어제 내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었는데. 용산에 있는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다른 곳에 맡겼을 텐데. 아무튼 이제 어쩔 수 없다. 한글로 작성한 원고는 다 살았으면 좋겠다. 내일 중으로 다 복구가 되면 좋겠다. 주말은 넘기지 말아야 할 텐데. L 선생 원고를 검토하려면 이미 수정해 놓은 것을 봐야 한다. 두 chapter를 수정해 놨는데 일단 그것은 그대로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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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9월에 대학로의 중학교를 그만두고 연구소로 옮겼다. 잠깐 망설였지만, 가까운 선배 K 선생과 L 선생이 옮기라고 권한다. 아직 서른 전이니 모험을 해 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옮기기로 했다. 요즘 같으면 그렇게 가는 것은 생각도 하기 어렵다. 그때만 해도 석사 학위만 가지고 특채로 들어갈 수 있었다. 석사 학위를 가진 사람도 별로 없을 때이다. 요즘이야 박사가 넘치는 세상 아닌가? 아무튼 석사 학위 받은 지 한 달 지나서 연구소로 가게 되었다. 학기를 마치지 못한 채 학교를 떠나게 되어 학교에 미안하기는 했지만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기로 했다.
연구소 생활이 순탄하지는 않았다. 연구 생활을 해 본 적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연구를 하고 보고서를 쓰는 것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연구소에서는 누구도 그런 것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일단 연구소에 왔으면 당연히 그런 일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스스로 깨우치는 일이 남았다. 남들이 써 놓은 보고서를 자세히 봐야 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어야 했다. 수업으로부터 해방은 되었지만 연구소 생활에 재미는 없었다. 퇴근할 때까지 종일 내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연구소에서 처음에 주어진 과제는 문제해결력에 관한 것이었다. 1985년에는 문제해결력이 한참 유행하던 시기였다. 말을 들은 적은 있지만, 내용은 잘 몰랐다. 이 책 저 책을 복사해서 읽어야 했다. 요즘에는 저작권 문제로 책을 복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그때만 해도 책을 복사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다. 요즘에는 해외 문헌을 구입하는 것도 어렵지 않지만 그 당시만 해도 어려웠다. 미국 문헌은 해외 유학생을 통해서 구해야 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구한 문헌을 좋으나 싫으나 읽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하루 종일 책만 읽던 시절이었다. 그런 팔자가 될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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