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가다 (498)
2022년 9월 1일 새벽 0시 50분이다. 9월이 시작되었다. 어제는 밀린 일 처리를 위해 오전부터 외출해야 했다. 타이어 공기압 때문에 서비스센터에 다녀왔다. 공기 주입기로는 35 psi로 나오는데 계기판에는 여전히 30 psi로 공기압이 낮다고 나온다. 계기판 문제인가? 서비스센터가 9시에 시작하기에 그 시간에 맞추어 갔다. 예상대로 첫 손님이다. 정해 놓고 다니는 서비스센터로 직원들이 친절했다. 타이어에 공기를 주입하고 나서 시운전까지 해서 계기판이 정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게다가 무료라니. 20여분을 수고했는데도 그냥 가라고 한다. 고마울 뿐이다.
다른 서비스센터도 그런가? SM차라 르노코리아 서비스센터를 이용하고 있다. 보증기간이 지났는데도 친절했다. 이전에 개인이 운영하는 조그만 서비스센터를 갔다가, 마음에 들지 않아 그냥 가려는데 1만 원을 내라고 했었다. 차를 쓱 들러본 것이 전부였는데. 다투기도 귀찮아 그냥 주고 말았다. 그런 식으로 운영하다가는 오래가지 않아 망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르노코리아 서비스센터에서 기분 좋게 나왔다. 그런데 차를 운행하다 보니 문제 있는 바퀴의 psi가 36에서 35로 내려갔다. 한참 후에 다시 36 psi로 올라가기는 했다. 타이어에 문제가 있나? 며칠 동안은 잘 살펴봐야 할 것 같다.
밀린 통장 정리도 할 겸 오랫 만에 거래 은행에 들렀다. 거래 은행이라고 하지만 은행과 나 사이에 대단한 거래가 있는 것도 아니다. 거래가 있기는 했었다. 오래전에 집 산다고 큰돈을 빌렸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3억은 되지 않을까? 당시에는 금리도 꽤 높았던 것 같다. 그러니 은행에 이자로 갔다 준 돈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은행에 다니던 친구가 돈 많이 빌려가서 잘 갚는 고객이 최고라고 했었는데, 아마 내가 그런 고객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랬었나? 그 돈을 다 갚고 나니 은행에서 돈 빌려준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 담보 없이 신용으로 싸게 빌려준다고 했다. 다행히 은행에서 큰돈 빌릴 상황은 오지 않았다.
겪어본 사람들이라면 잘 알 것이다. 매달 빚을 갚는 일은 매우 고통스럽다. 월급통장에서 따박따박 빠져나갔다. 어차피 갚아야 할 돈이기는 하지만 생돈이 나간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급적 은행 돈을 빌리지 않고 살아왔다. 대신 연금 공단에서 빌렸다. 무이자에 6년 거치 후에 원금만 4년 동안 분할 상환하면 되는 좋은 조건이었던 것 같다. 공무원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굳이 은행돈을 쓰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단지 주거래 통장이 그 은행 통장이었을 뿐이다. 29년 동안 월급과 최근 1년 동안의 연금이 매달 그 은행의 통장으로 입금된다. 그래도 이 지점에서만 30년 동안 한결같이 거래해 온 셈이다.
그래서 그런지 돈을 빌리지 않아도 이 지점에서 잘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에게나 다 주는 달력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해마다 달력을 챙겨준다. 아주 가끔씩은 선물도 준다. 사실 오늘도 생각지 않게 타월을 받았다. 충성도가 높은 고객이라서 그런가? 사실 인천으로 오기 전에 서울에서도 10여 년간 그 은행을 이용하기는 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42년 동안 그 은행을 이용한 셈이다. 하지만 어쩐지 이제 은행이 나를 손절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그럴 때가 되었다. 은행이 내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손절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런다고 해도 서운하지 않다.
두 달만에 이발도 했다. 머리카락이 날리기 시작해서 불편했다. 그 사이에 이발 요금이 꽤 올랐다. 1만 원에서 1만 3000원으로. 요즘 물가가 많이 오른다고 하더니. 사실 그 미장원의 이발 요금이 오를 때가 되기는 했다. 몇 년간 1만 원이었으니. 김 원장은 종로에서 몇 천 원이면 이발할 수 있다고 했었는데,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다. 이발하자고 종로까지 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아마 종로는 손님 회전이 빨라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가는 동네 미장원에는 손님이 많지 않다. 내가 첫 손님일 때가 많다. 30 m 거리에 미장원이 4개나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요즘에는 미장원에 들어가는 것에 익숙하다 못해 자연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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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udenthal이 Piaget의 책을 한 50번은 봐야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다고 한 것이 기억난다. 사실 Freudenthal은 Piaget를 못 마땅하게 생각해서 그런 말을 한 것이다. 아무튼 Freudenthal 같은 대가도 그런 말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1983~1984년 당시의 내가 Piaget(와 Inhelder의 공저인) 책을 읽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50번을 읽어 본 것도 아니었고. 과학실에서 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그 책 때문에 힘들어했고 슬퍼했고 속상해했다. 졸업은 해야 하고 책은 어렵고.
사실 어떤 수도 없었다. 누가 대신 읽어 줄 것도 아니었다. 포기하든가 아니면 다시 읽는 수밖에. 1984년의 여름방학을 보내면서 모질게 마음먹었다. 다시 읽어 보자고. 처음 읽으면서 정리해 둔 것과 비교해 가면서 열심히 읽었다. 책에는 실험을 하고 그것을 해석한 부분이 많았는데, 처음 정리한 내용을 보니 뭔가 어설프기는 했다. 책을 다시 보면서 그렇게 정리한 내용을 수정해 나갔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들이 많이 있었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시간이 단축되어 가기는 했다.
게다가 책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도 아주 조금씩이지만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책에 집중하면서 점차 Piaget와 Inhelder가 이러이러한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 것을 정리하면서 새로운 내용을 이해하는데 이용했다. 이미 정리한 내용이 틀린 것 같으면 새롭게 수정했고, 또 그것을 바탕으로 그다음 내용을 이해했다. 그런 과정이 몇 달 동안 계속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졸업해야겠다는 절박한 마음이 작용해서 잘 모르는 것인데도 마치 이해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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