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가다 (497)
2022년 8월 31일 새벽 0시 35분이다. 2022년 8월의 마지막 날이다. 어제는 종일 비가 왔다. 많이 내린 곳도 있다고 하는데 이곳은 그냥 부슬비 정도였다. 오늘은 비가 오락가락할 모양이다. 더위도 꺾인 것 같은데 곧 태풍이 온다고 한다. 9월 5일에 약속을 잡았는데 태풍 때문에 무산이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어제부터 동네 산책이라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첫날인 오늘부터 하지 못했다. 이유를 대라면 다섯 가지 정도는 댈 수 있다. 비가 와서, 기다리는 택배가 있어서, 무릎이 아파서, 이발을 안 해 머리카락이 날려서, 코스가 마음에 안 들어서. 사실 그냥 귀찮아서 안 나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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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컴퓨터와 붙어 사는데 '알약'에 문제가 있다고 해서 놀랐다. 무료 제품이라 문제가 있어도 딱히 뭐라 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컴퓨터가 부팅이 안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행히 부팅도 되고 별문제도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안 읽어 봤지만 무슨 프로그램을 구동하면 알약에서 랜섬웨어를 찾은 것처럼 메시지를 보낸다고 하는 것 같다. 아마도 나는 이용하지 않는 프로그램인 것 같다. 하루 종일 컴퓨터를 사용하지만 내가 이용하는 프로그램은 몇 개 안 된다. 그래서 아마 별문제 없이 지나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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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육과정의 윤곽이 나왔다고 한다. 초등학교 1, 2학년 국어시간이 늘어난다고 한다. 2년 동안 34시간이 늘어난다고 한다. 잘한 것으로 보인다. 국어를 못하면 모든 것을 못하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실질적인 문해력이 떨어졌다는 뉴스를 보았다. 사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사실상 한자 교육을 포기했을 때부터 충분히 예견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제라도 문해력을 기른다고 하니 다행이기는 하다. 하지만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 모르겠다. '심심( 甚深)한 사과(謝過)'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수학 시간은 줄고 '공통수학' 이외에 '기본수학'이라는 과목이 생긴다고 한다. 공통수학을 이수할 정도가 되지 않는 학생을 위해 그런 과목을 만든 것 같다. 기본수학의 교육과정은 중학교 수학의 교육과정과 그 내용이 일부 겹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설마 초등학교 수학까지 내려가는 것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어찌 되었는 기본수학이 들어오고, 그 과목을 이수하는 학생이 많아지면 고등학교 수학의 수준은 저절로 하향되는 것이다. 결국 수능의 수학 시험의 난이도 역시 내려갈 것이다. 이런 것이 수학교육의 정상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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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가을에 대학로에 있는 학교로 옮기면서 석사학위 논문을 마무리지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그 학교에도 석사 과정을 밟는 사람이 많았고, 그래서 공부하는 것에는 다들 호의적이었다. 이전 학교에 비해 수업 시수가 적어서 좋았다. 그만큼 시간 활용도 할 수 있었다. 수업을 미리 한 다음에 오후에 책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다 보니 집중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교무실을 떠나 과학실 한 구석에 자리를 마련했다. 교장, 교감 그리고 과학실을 담당했던 장 선생이 도와주었다. 5년 선배인 장 선생도 석사 과정을 이수 중이었다.
과학 선생도 아니었지만 과학실에서 사는 것에 대해 누구도 뭐라 하지 않았다. 가끔씩 사람들이 올라와 구경하기도 했고 커피도 마시면서 격려도 해 주었다. 다른 과학 선생들도 여러 명이 있었는데 거의 대학 선배였다. 그중에는 대학 선배 겸 고등학교 선배도 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행복하게 지냈다. 교장 선생님도 불조심하라고 하는 말 이외에 다른 말은 하지 않으셨다. 그렇게 과학실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나서는 공강 시간에 거의 과학실에 올라와 있었다. 퇴근 후에도 늦게까지 앉아 있었다. 자취방이 협소해서 학교에 있는 것이 나았다.
당시 오전 근무만 하던 토요일에도 늦게까지 남아서 그리고 어떤 날에는 일요일에도 출근해서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틈틈이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놀러도 다니고 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지만 아무튼 시간 나는 대로 그 어려운 책을 봐야만 했다. 그런데 1984년의 여름 방학이 다 지나가도록 보고 또 보았지만 소득은 없었다. 한줄한줄 다 읽어봤지만 Piaget와 Inhelder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책을 장별로 복사한 다음 줄까지 쳐 가면서 한 단어씩 꼼꼼히 전부 읽었지만 한숨만 나올 뿐이었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만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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