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를 보다
어쩌다 만화를 좋아하게 되었고, 지금도 만화를 즐기지만 사실 볼 시간은 많지 않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고, 그렇다고 무의미 하게 시간을 보내기도 싫을 때, 복잡한 일로 머리가 어지러울 때, 가끔은 피곤할 때, 그리고 몸이 아플 때도 만화를 본다. 그냥 쉬고 싶을 때도 만화를 보기도 한다. 아주 오래전 만화를 나쁘다고 이야기 하던 시절도 있었다. '불량'이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하지만 나는 그 시절에도 만화를 봤다. 동네에는 만화를 빌려주는 '만화방'이 제법 있었다. 만화를 보며 행복해 했던 추억도 있다. 여전히 김종래라는 이름의 만화가를 기억하고 있다. ≪엄마 찾아 삼만리≫가 복간되어 기쁜 마음으로 구입했다.
일본 만화가 국내 만화계를 점령한 것이 꽤 되었다. 한 때 상당히 인기였던 ≪미스터 초밥왕≫, 그리고 지금도 인기가 있는 ≪신의 물방울≫ 등이 있다. 나도 일본 만화를 본다. 잘 그렸으니까. 근자에는 다니구치 지로(谷口ジロ―)의 만화에 빠져 있다. ≪K≫를 비롯해서 ≪신들의 봉우리≫, ≪고독한 미식가≫, ≪열네 살≫, ≪개를 기르다≫, ≪느티나무의 선물≫, ≪아버지≫, … 다니구치 지로의 세심한 그림이 마음에 든다. 다니구치의 모든 만화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스토리가 서정적이다. (후기 2022년 1월 12일. 1947년생인 다니구치 지로는 2017년에 사망했다. 그의 만화를 더 이상 못 보게 되어 유감이다.)
일본 만화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본 만화에는 글 작가와 그림 작가가 다른 경우가 흔해 보인다. ≪신의 물방울≫은 그림 작가보다 오히려 글 작가 아기 타다시(亞樹直)가 더 유명한 것 같다. 아기 타다시는 남매인 두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필명이다. 그들은 아기 타다시 이외에도 여러 필명을 사용한다.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도 글 작가가 따로 있고, 다니구치 지로는 그림만 그린 경우가 많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난 다니구치 지로의 그림 스타일이 좋다. ≪K≫, ≪신들의 봉우리≫, ≪고독한 미식가≫의 글 작가는 모두 따로 있다. 나름대로 분업 체제가 갖추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 만화도 그런가?
모든 일본 만화가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본 일본 만화들은 대개 스토리가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는 편이다. ≪아돌프에게 고한다≫, ≪용≫, ≪지팡구≫ 등이 그렇다. 게다가, ≪아돌프에게 고한다≫의 테즈카 오사무(手塚治虫)가 만화에 등장하는 호텔 모습을 시대에 맞추어 그리려고 얼마나 고심했는지 말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은 상당한 고증과 자료 수집을 통해 사실에 부합하게 정성껏 그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그 만화에도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끝 부분이 급하게 마무리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마도 연재물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대하 만화 ≪용≫도 갑작스럽게 마무리되어 이상했다.
허영만의 ≪식객≫은 자료 수집과 고증에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 그가 그리고 있는 ≪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역시 그러한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허영만의 초기 출세작으로 ≪각시탈≫이 있다. 이 만화를 원작으로 한 TV 드라마가 최근에 방영되고 있다. 복간된 ≪각시탈≫에서 허영만이 아쉬워하고 있듯이, 이 만화는 고증이 완전하지 않다. ≪각시탈≫ 제2판이 나왔으면 한다. 자료 조사와 고증을 철저히 해서. 우리나라에서 만화 분야에서 자료 조사와 고증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것 같지 않다. 역사물을 그리는 경우에는 자료 조사와 고증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과거에는 대개 작가의 상상력에 맡겨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료 조사나 고증만 잘 되어 있고 만화적 상상력이 없다면 아마 그 만화는 보게 되지 않을 것이다. 자료 수집과 고증, 치밀한 스토리 구성, 글 작가와 그림 작가의 협업 시스템 등에서 아직은 일본 만화가 앞서 가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일본 만화가 일본은 물론, 우리나라, 미국 등에서 통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한류나 K-pop처럼 우리나라 만화 산업도 충분히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후기 2022년 1월 12일. 최근 한국의 웹튠이 일본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나는 눈이 피곤해서 웹튠을 안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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