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일

늙어 가다 (571)

지족재 2022. 11. 23. 02:31

늙어 가다  (571)

 

2022년 11월 23일 새벽 1시 40분이 지났다. 고등학교 동기의 부고를 받았다. 안타깝다. 저 세상으로 가기에는 아직 이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명복을 빈다. 이따금 고등학교 동기의 갑작스러운 부음을 받게 되면 당혹스럽다. 고등학교 동기 중에도 벌써 여러 명이 세상을 떠났다. 동기의 부음을 받으면서 나도 이제 죽음이 갑작스럽게 찾아올 나이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언제 저 세상으로 갈지 알 수 없지만 아프다가 죽지는 말아야 할 텐데. 희망 사항이기는 하다. 아무튼 투병 생활이 길어지면 환자도 힘들지만 가족도 힘들다.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는 한다. 어떻게 보면 아직 그럴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럴 나이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사실 몇 년 전에 이미 유서도 써 놨고 매년 업그레이드를 하고 있다. 어떻게 죽을지는 모르지만 번거로운 장례식은 피하고 싶어서 조촐한 가족장으로 치러달라고 써 놨다. 그동안 이런저런 친분으로 문상도 많이 다녔다. 서울 지역의 장례식장은 거의 안 가본 곳이 없다. 나도 어머니 상에 그런 친분 때문에 여러 사람이 문상을 오기도 했다. 하지만 사실 어머니와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다.  

 

관례화된 것이다 보니 나도 그런 관례를 따르기는 했다. 하지만 내 죽음도 그렇게 보내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개는 나와 면식이 있지도 않은 사람들이 올 것이다. 망자의 가족을 위로한다고 문상을 오기도 하지만, 더러는 이런저런 체면이나 의무감 때문에 문상을 오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코로나 이후로는 코로나 핑계로 거의 부의금만 보내기도 했다. 코로나는 문상에 가지 않아도 될 좋은 핑곗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의 부음에는 아예 계좌번호가 붙어 있기도 하다. 오히려 편하다. 부의금으로 문상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으니.

 

점점 그렇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의무감도 체면도 사라져서, 특별한 관계가 없는 이상 문상을 가지 않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부고도 내지 않고 아주 가까운 몇 사람에게만 알리는 그런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나도 아버지 상 때 그런 고민을 많이 하기는 했다. 그래서 일부 사람에게만 알렸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던 초창기인 1980년대 초반에도 동료 부모님의 환갑잔치를 알리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알리면 오히려 비난을 받는 세상이 되었다. 머지않아 직장 동료에게 부모의 부음을 알리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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