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가다 (768)
2023년 6월 29일 아침 7시 55분이 다 되었다. 비가 오고 있다. 오늘 장맛비가 세차게 내릴 것이라는 예보가 있다. 아직은 세차게 내리는 정도는 아니다. 어제는 더 이상 사용할 것 같지 않은 짐을 정리했다. 상자에 고이 담긴 것들이 있다. 10년은 그렇게 있었을 것이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다지 대단한 것이 들어있지도 않았다. 언젠가 다시 사용할 날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잘 보관해 놨을 것이다. 결국은 10년 넘게 단 한 번도 찾지 않았으면서. 상당히 오래된 책이 제법 있다. 하지만 다시 보고 싶지 않을 정도로 낡은 책이다.
지금 보니 보관할 가치가 없는 것이 분명하다. 오래된 CD도 있고 VHS도 있다. 카세트테이프도 있고. 오래되었지만 골동품이라 할 수도 없는 전자 제품도 있다. 옛날에 유명했던 일본 브랜드의 이름이 붙어 있다. 일본의 그 회사가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작동도 되지 않는다. 그런 것을 지금까지 도대체 왜 가지고 있었을까? 그 당시에는 아마도 어떤 의미를 부여하면서 간직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랗게 방치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이제 세월이 가면서 그때 그 의미는 완전히 탈색되어 사라지고 지금은 그저 쓰레기로 남아 냉혹한 처분을 감수해야 하는 짐으로 남았다.
과감히 정리했다. 아쉽다는 생각이 좀 들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렇게 정리해도 조금도 아쉬운 마음이 그다지 들지 않는다. 나이가 든 탓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난 몇 년간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던 물건들이다. 버리기 전에 다시 한번 잘 살펴본다고 시간만 더 들었다. 어차피 버릴 것이면서. 낡기도 했고 때도 타서 남에게 줄만한 물건도 되지 못한다. 그렇게 정리한다고 어제 하루 종일 육체적인 노동을 했다. 그런데 좀 과도하게 움직여서 그랬는지 근육통이 생겼다. 하루에 다 정리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하루에 다 정리할 것처럼 움직였다. 일을 끝내지도 못했고 손에 상처만 났다.
집안 곳곳에 숨어 있는 물건들이 아직도 많다. 살면서 짐만 잔뜩 늘어났다. 그때는 언젠가 이렇게 과감하게 정리해 버리게 될 것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그 정리할 때가 지금 왔다. 지금이라도 정리하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몇 년 동안 또 방치 상태로 있게 될 것이다. 은퇴하면서 지금까지 학교 연구실에 있던 물건은 85% 정도는 정리했다. 그런데도 아직 15%가 남아 있다. 미련이 남아 정리하지 못한 것들이다. 그리고 집안 어딘가에 숨은 채 몇 년 동안 방치된 물건들. 다시 한번 심기일전(心機一轉)이 필요하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는 또 정리하지 못한 채 몇 년을 보낼 것이다.
그런데 마음만 앞섰다. 사실 어제도 심기일전을 외치면서 이 과업에 야심 차게 도전했지만 오늘 아침이 되니 어제의 그 열정이 이미 어느 정도 사라져 버렸다. 손가락에 생긴 상처와 근육통 때문이다. "당장 내일 이사 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부산을 떨까? 손가락에 상처를 내면서까지. 쉬엄쉬엄해도 될 일인데." 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렇게 서둘러야 할 이유가 있나? 그러다가 혹시 중요한 물건까지 내다 버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은 누군가 머릿속에서 쉬엄쉬엄하라고 열심히 나를 꼬뜨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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