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

늙어 가다 (428)

지족재 2022. 6. 23. 00:30

늙어 가다 (428)

 

2022년 6월 23일 새벽 0시 10분이 다 되었다. 여당 대표의 징계가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서 소식이 나오기를 기다렸는데  방금 속보가 떴다. 그런데 7월 7일에 소명을 듣고 나서 결정한다고 한다. 한편 7억 원짜리 각서를 써 준 정무실장은 징계한다고 한다. 자세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아침까지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분위기로 봐서는 여당 대표도 징계를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증거가 있는지 없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윤리위에서 괜히 그러지는 않을 것이다. 잘못한 것이 있으면 누구라도 징계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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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원숭이 두창 환자가 1명 발생했다고 한다. 그 한 사람 만으로 원숭이 두창이 끝나게 될지, 아니면 여러 사람에게 전염이 될지 알 수 없다. 해외에서 온 사람이라고 한다. 해외에서 원숭이 두창에 감염된 상태로 입국한 것이다. 그 사람의 입국 이후의 동선을 추적하지 않아도 되는지 모르겠다. 방역 당국에서 잘 대응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 사람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다면, 그리고 국내에서 그 사람과 접촉했다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아무쪼록 더 이상의 환자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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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고 잠도 안 오고 특별히 해야 할 일도 없다 보니 옛날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과거는 1961년이 끝으로 보인다. 그때가 만 다섯 살 시절이다. 만 두 살 때인 1958년의 에피소드 하나가 기억에 남아 있기는 하지만, 나 스스로도 믿기 어렵다. 잘못된 기억일 수도 있고 가공의 기억일 수도 있다. 만 두 살 때의 일을 기억할 수 있다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는가? 무려 64년 전의 일인데. 하지만 그 기억이 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기는 한다. 기억하는 내용이 대단한 것도 아니다. 동생이 태어났다는 것이다. 

 

아무튼 그 분명하지 않은 기억은 차치(且置)하고, 좀 더 분명한 기억을 찾아보았다. 1962년에는 수원에서 살았지만, 1961년에는 서울에 살았다. 다행스럽게도 1961년에 마포구 아현동에 살았다는 것을 말해 줄 수 있는 서류 상의 기록이 있다. 아현동이 지금은 어떤 모습인지 잘 모르겠다. 아무튼 당시에는 언덕길이 많았고 골목도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그 언덕길들은 그냥 그대로 있지 않을까? 아니면 다 깎아서 아파트를 지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당시 우리 집이 산 중턱쯤에 있었다는 것이다. 아래를 내려다볼 수 있었다.  

 

집에서 아래를 내려다볼 수는 있지만, 위험해서 철조망으로 막아 두었다. 그 철조망 때문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일이 생겼다. 철조망에 올라섰다가 철사에 오른팔의 피부가 찢어지는 일이 있었다. 피를 많이 흘려서 일단 지혈을 해야 했다. 당시 지혈제로 민간에서 사용하던 것이 갑오징어의 갑을 말린 것이었다. 그것을 긁으면 하얀 가루가 나오고 그것을 상처에 뿌리면 지혈이 된다. 요즘 같으면 병원에 가서 몇 바늘 꿰매면 되는 일인데. 아무튼 그렇게 해서 상처가 아물기는 했지만, 지금도 팔에 그 흉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또 하나의 잊을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 5·16 군사 정변이 있던 날이다. 당시 다섯 살짜리가 그것을 알 수는 없었고, 나중에 알게 된 일이다. 아무튼 그날 나는 미아가 되었다. 꼬불꼬불한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그만 집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하게 되었다. 경찰지서에 앉아 있으니 어머니가 데리러 온 기억이 있다. 어떻게 지서에 있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길거리를 헤매고 있으니 누군가가 데려다 놓았을 것 같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떻게 내가 거기에 있는 줄 아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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