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유리문 안에서(나쓰메 소세키 저, 김정숙 역, 문학의숲)
내가 가진 책은 2008년에 발행된 초판 1쇄이다. 하지만 언제 이 책을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2008년인지 아니면 그 이후인지. 깊은 생각 없이 아마도 '나쓰메 소세키'라는 그 이름에 끌려서 샀을 것이다. <유리문 안에서>의 '유리문'은 그의 자택 서재의 문이다. 그 시대에 맞지 않게 그 문이 유리문이었고, 그의 서재가 유리문을 경계로 그 안쪽에 있어서 '유리문 안에서'라고 한 것이다. 그가 사망하기 1년 전에 병 중에서 이런저런 단상들을 가볍게 적어 나간 것이다. 역자는 이 작품에서 나쓰메 소세키의 인간관과 인생관이 보인다고 한다.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인간관과 인생관에는 별 관심이 없다. 굳이 그의 인간관과 인생관이 무엇인지 찾으면서 이 책을 읽지도 않았다. 그냥 그가 와병으로 서재에서 즉, 유리문 안쪽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을 쫓아갈 뿐이었다. 내게도 그런 '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도 서재가 있고 그리고 그 서재에서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유리창'도 있다. 하지만 서재에서 바깥을 내다보는 일은 거의 없다. 바깥이 자연스럽게 보이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아무튼 그 유리문이 나와 내 바깥의 세계의 경계를 이루는 것은 분명하다. 그 경계를 더 확실히 해 주는 것은 현관의 '철문'이지만.
은퇴하고 연구실 비슷하게 사용하는 당산동의 방도 서재나 다름이 없다. 나도 서재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생각만 하는 것은 아니고 책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노래도 듣는다. 소세키처럼 거의 누워 지내야 하는 환자가 아니다 보니. 가끔 블로그에 글도 쓴다. 거기에 내 인간관과 인생관이 있나? 그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내 인간관과 인생관이라는 것을 정리해 본 적이 없다. 그러니 내 인간관과 인생관이 무엇이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마땅히 답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인간과 인생에 대한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있기는 있다.
은퇴하고 나서 어쩌면 나도 소세키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누군가 소세키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말해도 아니라고 하기도 어렵다. 나도 가끔은 옛날의 지나간 일에 대해 적기도 하고, 요즘의 일에 대해서도 적고 있지 않은가? 기억이 나면 기억이 나는 대로 기억이 나지 않으면 나지 않는 대로 지나간 일에 대해 적고 있다. 친구들과의 일에 대해서도 적고 있고, 내 학생들과의 일에 대해서도 적고 있다. 그러니 그런대로 소세키 흉내를 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는 소세키만 한 문재(文才)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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