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

늙어 가다 (425)

지족재 2022. 6. 20. 01:46

늙어 가다 (425)

 

2022년 6월 20일 새벽 1시 15분이 다 되었다. 새벽인데도 덥다. 이렇게 더우면 잠을 잘 못 자는데. 그렇다고 에어컨을 켜기도 그렇고. 잠도 안 오고 해서 유년(幼年)의 기억을 살려 보았다. 어린 시절 한때 수원에 살았던 적이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생전 말씀에 따르면, 수원에 살다가 서울로 이사하고 다시 수원으로 갔다가 재차 서울로 이사했다. 두 번째 수원 살이의 몇 장면이 기억난다. 두 번째의 짧은 수원 살이는 1962년의 일이 아니었을까? 60년 전이니 내 유년의 기억이 완벽하게 정확할 리는 없다. 하지만 1962년으로 특정하는 데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1963년에 서울에서 국민학교에 입학했지만, 1962년의 여름과 가을에는 수원에 살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지붕 아래에 제비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요즘에는 제비를 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아카시아꽃도 많아서 돌아다니며 많이 먹었던 기억도 있다. 서울에 살게 되면서는 아카시아꽃을 먹게 되지 않았지만, 여섯 살짜리의 수원 시절에는 동네 꼬마들끼리 어울려 많이도 먹었다. 요즘에 듣자니 '아카시아'는 정확한 이름이 아니고 '아카시'가 정확한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금도 보통 다 아카시아라고 하지 않는가? 

 

요즘처럼 과자가 흔하던 시절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센베'라고 하는 것이 있기는 했지만 자주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카시아꽃만 먹고 돌아다닌 것은 아니었다. 흔했던 것이 메뚜기와 번데기이다. 벼 수확기 무렵에 온 식구가 다 나서서 논으로 메뚜기를 잡으로 갔던 기억이 있다. 요즘 아이들이야 누가 메뚜기를 먹을까? 나도 지금 먹으라고 하면 못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잘만 먹었다. 번데기도 흔했던 것 같다. 지금이야 번데기의 정체를 알고 있지만, 그 시절의 여섯 살짜리는 번데기가 그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생각밖에 안 했을 것이다.  

 

어린아이 눈으로 보기에는 꽤 넓은 길이 집 앞에 있었다. 당시 어른들 이야기로는 서울로 갈 수 있는 길이라고 했던 것 같다. 포장된 도로가 아니라 그냥 흙 길이었다. 작은 돌들이 좀 깔려 있기는 했다. 뛰어다니다가 넘어져서 무릎에서 피가 났던 적도 있었고. 집 뒤로는 논이 있었고, 논을 좀 지나가면 '장대(將臺)'라고 부르는 옛 건물이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원래 이름은 동쪽에 있다고 해서 '동장대'이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장대라고 불렀다. 그 장대를 지나면 고아원이 있었다. 고아원 마당에 미끄럼틀이 있어 자주 놀러 갔던 기억이 있다.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의 여섯 살짜리가 당시 수원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기억할 수 있는 것은 인상에 남은 몇 가지 에피소드 정도에 불과하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기도 했지만 누구인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서울에서 언제 수원으로 갔다가 언제 다시 서울로 올라오게 되었는지 자세한 날짜를 기억할 수도 없다. 다만 제비가 많이 있었고, 아카시아꽃이 만발했었고, 메뚜기를 잡으로 다닌 기억이 남아 있다 보니 1962년의 여름과 가을이었다고 특정하고 있다. 나이 들어서 수원에서 살던 동네를 확인해 보니 현재 '매향동'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집 앞에 있던 큰길은 43번 국도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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