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 가다(92)
무력감으로 한 달을 보냈다. 평온하려고 했지만 쉽지는 않다. 올림픽도 보고, 잠깐씩 책도 보고, 그리고 글도 썼지만 무력감이 물러가지는 않았다. 자려고 누우면 어머니가 생각났다. 무엇을 하고 계실까? 가보고 싶어했던 평남 순천에 가보셨을까? 할머니도 만나셨을까? 생전에 그렇게 가고 싶어 했고, 그렇게 만나고 싶어하셨는데. 마지막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그저 깊이 잠드신 것처럼 보일 뿐이었는데.
생전에 순천 이야기를 잠깐씩 하셨다. 십대 초반을 보낸 그곳이 가 보고 싶다고. 결국은 못 가보시고 말았다. 언젠가 중국 여행을 하실 때 북한 음식점에서 종업원에게 물어더니 순천이 지금은 평양에 속한다고 했단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외할머니를 그리워 하셨다. 내가 기억하는 외활머니는 치매로 식구들을 힘들게 하신 분이건만.
월남하실 때의 이야기도 가끔 하셨다. 한 밤중에 강을 건너 왔는데, 배에서 내려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을 지나오셨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 시절이라 어느 지역인지는 모르겠다고 하셨다. 아마 임진강을 거쳐 한강 하구에 도착하신 것이 아닐까.
이제 하늘에서 잘 지내실 것이라 믿는다. 비록 육신은 한줌 재로 변하고 말았지만 영혼은 하늘 나라 어딘가에서 평안히 계실 것이다. 지난 날의 힘든 삶을 위로 받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