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

늙어 가다 (454)

지족재 2022. 7. 19. 04:31

늙어 가다 (454)

 

2022년 7월 19일 새벽 3시 40분이 다 되었다. 며칠 사이에 코로나 상황이 악화되었다. 어제저녁 9시 기준으로 코로나 신규 감염자가 7만 명을 넘었다. 규제도 모두 해제되고, 경각심도 무너졌으니 코로나 상황이 악화될 것으로 충분히 예상은 했지만, 속도가 빠르다. '더블링'이라고 하더니, 며칠 사이에 그 더블링이 일어나고 있다. 이러다가 또 며칠 사이에 신규 감염자가 10만 명이 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금껏 코로나에 한 번도 감염되지 않은 사람이 3천3000만 명이라고 한다. 나도 그중의 한 명이다. 하지만 어쩐지 이번에는 피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도 뭔가 대책을 세우고 있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이전처럼 강력한 규제를 다시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니 각자도생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각자도생 한다고 하지만 외출을 자제하는 것과 소독을 잘하는 것 이외에 내가 별달리 할 일은 없는 것 같다. 다시 모든 계획이 뒤로 미루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계속될지 모르겠다. 기분 전환을 위해 차로 가까운 곳이나 다녀올까 라는 생각도 하기는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이 위험한 시국에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종일 집에 있자니 힘들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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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하고 1979년 3월에 첫 직장을 다니게 되었다. 그 직장에서 첫 1년은 정말 즐겁고 행복하게 보낸 기억이 있다. 나와 나이가 같은 분은 거의 없었고, 대개는 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만 있었다. 그러다 보니 모두 내게 잘해 주었다. 모임이란 모임은 거의 빠뜨리지 않고 다녔다. 월급에서 얼마씩 갹출해서 퇴근 후에 일주일에 한 번씩 유명 음식점을 순례하는 모임도 있었다. 그때 처음으로 먹어본 음식도 있었다. 을지로 어딘가에 막국수 집이 있었다. 상호는 모두 잊었지만, 그 후로 메밀 막국수는 지금까지도 최애 음식의 하나가 되었다.  

 

만 23살의 혈기방장(血氣方壯)한 나이 아니던가? 뭘 해도 지치지 않았던 것 같다. 퇴근 후에는 몇 사람들과 농구와 축구에 빠져 살기도 했다. 가까운 사람들과 여기저기 놀러 다니기도 했다. 그해 여름에 수동으로 1박 2일로 놀라간 적이 있다. 당시 수동에는 계곡을 막아 만든 수영장이 있었다. 오래 전의 일이라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43년이나 지난 일이다. 대학으로 직장을 옮기고 나서 수동에 여러 번 갔었지만, 아파트가 가득한 동네로 변했다. 더러 펜션이 있기는 했지만, 그 옛날의 그런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사실 수업을 하는 것에는 흥미를 갖지 못했다. 그것이 본업임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과목을 네 번씩이나 반복해야 하는 현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두 번까지는 반복할 수 있다. 첫 번째 수업을 교정하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 수업부터는 힘들었다. 중학교 수학이니, 한번 수업이 끝나면 책을 다시 안 봐도 될 정도가 된다. 모든 문제의 풀이와 답을 다 기억하게 된다. 그러니 책이 없어도 수업할 수 있을 정도가 되고 만다. 게다가 학생들이 엄청나게 어려운 것을 묻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본업에 대한 흥미가 점점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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