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

늙어 가다 (456)

지족재 2022. 7. 21. 04:36

늙어 가다 (456)

 

2022년 7월 21일 새벽 3시 40분이 지났다. 장맛비가 내리고 있다. 빗소리가 듣기 좋아 잠시 창밖을 내다보았다.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세차게 쏟아지는 정도는 아니다. 딱 듣기 좋을 정도이다. 잠깐 나가서 걸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 새벽에 그 무슨 주책인가 싶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나이는 아니지 않나? 호젓한 곳에서 멍 때리고 앉아 들을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지금도 나쁘지는 않다. 산속에 들어앉아 있다는 생각을 해 보려고 하지만, 그러기에는 내 방의 풍경이 너무 멋없다. 아무튼 빗소리가 좋기는 한데 너무 많이 오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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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 직장 생활 2년 차를 맞이 했었다. 하지만 그해는 첫해보다 즐겁지 않았다. 즐겁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내내 이런저런 고민으로 힘들어했던 한 해였다. 여전히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여기저기 잘 놀러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방학만 기다려졌다. 본업에서 마음이 떠나고 있었다. 똑같은 수업을 네 번씩이나 반복해야 하는 단조로움이 견디기 힘들었고 짜증스러웠다. 특히 네 번째 수업이 되면 뭔가 모르게 정신이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았다. 나만 그런 것인가?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똑같은 수업을 네 번씩 하는 것 같았다.  

 

그 1년 내내 하루하루가 빨리 마무리되기를 기다렸다. 대학원을 다니던 시절이었는데, 대학원 수업 때문에 그나마 남들보다 일찍 퇴근할 수 있어서 좋았다. 사실 대학원에 꼭 진학할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당장 군대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그것을 피하기 위해서 진학했던 것이다. 아무튼 그때만 해도 대학원 다니는 교사가 많지 않아서 그랬을까? 교감 선생님의 호의로 3시 반이면 학교를 나설 수 있었다. 사실 그렇게 나서도 6시가 다 되어야 대학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전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그리고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결석할 수 없어 대학원에 다니기는 했지만, 그다지 큰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과목은 전혀 듣고 싶지 않기도 했다. 애초에 뭔가 더 공부하겠다는 생각으로 다닌 것도 아니어서 건성건성 다녔다. 겉으로는 안 그런 척했지만, 사실 본업에 충실한 것도 아니었다. 수업에서는 열심히 설명하고 문제도 풀어 주었다. 이해 못 하는 학생도 많았다. 하지만 정해진 진도를 나가야 했기 때문에 일일이 신경을 쓸 겨늘도 없었고 쓰지도 않았다. 무조건 정해진 진도를 끝내야 했다. 학생들이 못 알아듣는다고 몇 번씩 반복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아무리 설명해도 못 알아듣는 학생이 꽤 있었다.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니.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이해를 못 하지?" 그저 그런 생각만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내게도 학생들에게도 그저 그런 수업이었다. 한두 명 정도가 이해한 모습을 보이면 그다음으로 진행했다. 그 당시에는 중학교 2학년에서 논증 기하를 취급했는데,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학생들이 몇 명 되지 않았다. 본업에 대한 흥미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게다가 "왜 중학교 교사를 하고 있느냐?" 하는 말도 듣고 있었다. 이래 저래 혼란스러웠던 1980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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