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태고의 시간들(올가 토카르추쿠 저, 최성은 역, 은행나무)
내가 가진 책은 2019년 12월에 발행된 1판 7쇄이다. 아마 그즈음에 사지 않았을까? 정확히 언제 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책을 샀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름을 아는 작가도 아니었다. 단지 올가 토카르추쿠가 2018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고 해서 그의 작품을 골랐을 뿐이다. 1판 1쇄가 2019년 1월에 발행된 것을 보면 1년 사이에 상당히 많이 팔린 것 같다. 책을 사고 나서 한번 읽었고, 그리고는 잘 보관해 두었었다. 나중에 다시 보기로 하고. 그런데 그때 " 이 책을 읽었던 사람들은 편안하게 읽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다시 읽고 나서도 여전히 그런 생각이 든다.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전체 내용이 들어오기는 한다.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기도 하고 이름들이 좀 생소하기도 해서 누가 누군지 체크하는 것이 좀 필요하기는 하다. 솔직히 말하면 내게는 이 책이 편안하게 읽히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소설'의 이미지와는 조금 다르기도 해서. 인간들 이야기만 등장하는 것도 아니어서 좀 혼란스럽기도 하다. '태고'라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겪은 격동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고 있기는 하다. 그런데 '태고'라는 지명 자체가 어색하다. 역자의 해설을 봐야 겨우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역자의 해설을 보니, 마을 사람들이 겪은 그 격동의 시기는 1910년 이후로 폴란드가 겪었던 그 격동의 시기와 일치한다. 이 소설에서 굳이 주인공을 찾자면 게노베파와 그 딸 미시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자의 해설에서는 미하우/게노베파-미시아/이지도르-아델카의 3대를 다룬다고 하고 있다. 미하우는 게노베파의 남편이고, 이지도르는 미시아의 (아버지가 다른 것으로 보이는) 동생이다. 그런데 사실 아델카의 이야기는 많지 않다. 있기는 있지만 거의 없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 아델카가 등장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좀 갑작스럽다.
크워스카와 그 딸 루타의 이야기도 많이 나온다. 미시아의 남편 파베우의 이야기도 많이 나오는 편이다. 이들이 부주인공쯤 된다고 할 수 있다. 이들이 아델카보다는 훨씬 더 많이 나오고 있다. 그러니 굳이 말하자면 미하우/게노베파와 파베우/미시아가 주인공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소설의 마지막에 아델카 이외에는 등장시킬 사람이 없었나? 작자의 깊은 뜻을 내가 알 수는 없다. 뭔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역자의 해설을 잘 읽기는 했지만 나로서는 잘 이해할 수 없었다. 문학 평론가들은 이해할 수 있겠지만 나는 그냥 평범한 독자 가 아니겠는가? 이 소설을 그렇게 복잡한 생각을 갖고 읽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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