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책

(책) 나를 부르는 숲

지족재 2023. 12. 2. 17:37

(책)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홍은택 옮김, 동아일보사)

 

내게는 이 책의 제목이 매우 매혹적이었다. <나를 부르는 숲>이라니. 이 책을 2002년에 샀었다. 초판 1쇄를 발행하고 불과 15일 만에 2쇄를 다시 발행한 것을 보면 이 책 제목에 매혹된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저자와 친구의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기이다. 세계 지리 시간에 배웠던 그 애팔래치아 산맥을 따라 나 있는 트레일이다. 2002년이면 21년 전이다. 그때만 해도 혈기 왕성한 때였다. 언젠가는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도전할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호기심에 이 책을 샀었을 것이다. 당시에 한 번 읽고 나중에 다시 보겠다고 다짐해서 책장 구석에 잘 보관해 두었다. 

 

이 책을 다시 보기까지 결국 21년이 걸린 셈이다. 그동안 애팔래치아 트레일 같은 것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았다. 바쁘게 살다 보니.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하려면 적어도 몇 개월은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이 미국에서 몇 개월동안 종주에 매진할 시간이 있겠는가. 이 책은 그렇게 잊힌 책이 되었다. 그러다가 은퇴 후에야 비로소 다시 보게 되었다.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하겠다는 자신감은 진작에 사라져 버렸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 아닐까. 2002년에도 이 책을 신중하게  읽었더라면 그때 이미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포기했을 것이다. 

 

하지만 2002년 당시만 해도 이 책에 나와 있는 위험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근거 없는 용기로 팽배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다시 책을 읽어 보니 무모하기 짝이 없는 종주를 시도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있게 이 책을 읽을 수 있었지만, 여기저기에서 위험을 겪은 스토리가 마음에 걸렸다. 벌레도 많고, 곰도 있고, 트레일 자체도 불량하고, 일기도 불량하고, 시설도 좋지 않고, 게다가 드물지만 사람이 피살당하기도 한다니. 옛날에 그런 트레일을 종주해 보겠다고 야무진 꿈을 꾸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냥 꿈으로 가지고 있기를 잘했다.

 

재미있게 읽기는 했지만, 이 책을 보면서 아쉬운 점도 있다. 비록 종주 안내서가 아니기는 하지만, 그래도 각 장마다 종주 일정을 보여주는 약식 지도라도 그려주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 사람들도 미국 지리를 잘 모르지 않을까? 한국에 사는 나야 더 말할 나위도 없고. 책 앞부분에 종주 전체를 나타내는 지도가 있기는 하지만, 각 장을 읽으면서 다시 앞 장을 펼쳐 위치를 확인하는 것이 좀 번거로웠다. 지도가 있었다면 저자를 따라 같이 종주하는 느낌이 좀 더 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행기이기는 하지만 여행 안내서 같은 역할도 좀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기대를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