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

늙어 가다 (484)

지족재 2022. 8. 18. 01:32

늙어 가다 (484)

 

2022년 8월 17일 새벽 0시 40분이다. 이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그냥 더워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요즘의 우리나라 사회가 하도 혼란스럽다 보니, 이 혼란한 시기가 빨리 없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다시 못 올 날들이 속절없이 지나간다고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소중하기는 하다. 하지만 집안에 들어앉아 대혼란의 시기를 보내려니 화만 난다. 그냥 "이런들 어떠리 저런들 어떠리"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김 원장 말대로 즐겁게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아무래도 세상 일에 너무 많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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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생활을 부평에서 하게 될 줄이야. 그리고 제대한 지 10년도 안 되어 복무하던 부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터를 잡고 살게 될 줄이야. 인생이 그렇게 펼쳐질지 어떻게 알았겠는가? 집에서 차로 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부대가 있었다. 부대가 있던 그 동네도 천지개벽했다. 지금도 그 부대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일대는 아파트촌으로 완전히 변했다. 아주 가끔씩 그쪽에 갈 때마다 군 시절이 생각난다. 그때는 부평이 그렇고 그런 평범한 도시였다. 간이역 같던 부평역은 지금은 초현대식 역이 되었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는 말이 절로 생각난다. 

 

워낙 조그만 부대라서 행정병이 몇 명 없었다. 어쩌다 그런 부대에 배치를 받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부대에 와서도 행정병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없다. 부대 내의 일반 행정은 모두 내 소관이었다. 사람이 없으니 웬만한 것은 다 혼자서 처리해야 했다. 거기 있으면서 타자도 쳐야 했다. 지금의 컴퓨터 자판과는 완전히 다른 형식의 자판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타자기도 쳐야 했고, 공지 사항을 알리는 차트 글씨도 써야 했다. 따로 배운 적도 없지만 하다 보니 익숙해졌다. 저녁 5시에 퇴근이지만, 내무 생활을 하는 사병에게는 퇴근 시간이라는 것이 따로 없다.    

 

일이 많으면 저녁 식사 후에 사무실에 와서 밀린 일을 처리해야 한다. 군대에 있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씩 고참에게 집합 당해 곤욕을 치른 적도 있지만, 그래도 의외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육군 규정도 자주 보면서 규정이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문서 수발도 중요한 업무였기 때문에 육본에도 자주 가야 했다. 그때만 해도 컴퓨터가 없던 시절 아닌가? 문서를 주고받을 다른 수단이 없었다. 육본 출입을 하느라 시골 간이역 같은 부평역을 자주 이용했었다. 상병이 되고 나서는 거의 매일 육본에 갔던 것 같다. 

 

남영역에서 내려 육본까지 걸어갔다. 육본에서 일을 일찍 마치고 가끔씩 남영역 근처의 커피집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문서 수발을 제대로 했는지 차분히 확인도 할 겸. 육본에는 사병이 이용할 수 있는 그런 장소는 없었다. 온통 장교 아니면 부사관들뿐이니 보이는 대로 경례도 해야 했다. 그러니 가급적 서둘러 나와야 한다. 당시에 카페라는 말은 없었던 것 같다. 다방은 아니고 그보다는 약간 윗 수준의 커피집은 있었다. '커피숍 '이라고 불렀던 것 같다. 남영역에 '고가(古家)'라는 이름의 커피숍이 있었다. 다방처럼 손님이 많지 않아서 편하게 있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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