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저런 일

연구실의 화초

지족재 2010. 6. 15. 14:47

연구실의 화초

 

연구실의 화초가 고생하고 있다. 그동안 연구실에 들어와 제 명대로 살다간 화초가 별로 없다.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나. 지금도 연구실에 할리퀸, 마리안느, 테이블 야자라는 이름의 초본 식물이 있다. 이따금씩 말라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안쓰럽다. 안쓰럽게 생각하면 뭐하나? 해 주는 게 아무 것도 없는 데. 이름도 생소한 서양 초본을 심은 화분이 한 두 개씩 연구실에 들어오게 된 것은 내 뜻이 아니다. 주로 학생들이 가져다주는 것을 고맙게 받았다. 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하면 잘 살려야 하는 데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연구실은 남향이다. 화초가 못살만한 환경은 아니다. 내 연구실의 화초는 박복하다. 다른 연구실에서는 아주 잘 살던 데, 하필이면 나를 만나서. 젊은 시절 잠시 난초에 관심을 둔 적도 있었다. 그 모습이 좋아서. 그래서 연구실에 난초가 있었던 적도 있지만, 그때도 마찬가지. 먼지 앉은 잎을 닦아주지도 않았고, 제대로 물로 주지 않았고, 제때 분갈이도 하지 않았다. 무심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지금도 스스로 무심하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달라진 것은 없다. 난초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르기보다는 그냥 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연구실에서 가장 오래도록 남아있는 것은 선인장이다. 어쩌다 한번 보아도 그때 그 자리에 있다.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는 것 같다. 달라졌지만 내가 모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 후기 1: 연구실의 할리퀸에 진딧물이 생겼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 격리 치료중이다. 하지만 잎이 다 말라 몰골이 말이 아니다. 영양제도 주었지만 잘 살 수 있을런지(2010. 7. 13).

* 후기 2: 할리퀸은 결국 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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