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중국여행(3) - 연변 4: 도문

지족재 2010. 8. 31. 01:55

 

중국여행(3) - 연변 4: 도문


  8월 20일. 연길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 30분에 도문(图们, 중국어 발음으로는 투먼)으로 출발했다. 도문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 내의 한 도시로 두만강(豆滿江)에 접해 있다. 강 건너 북한은 함경북도 온성군 남양이라고 했다. 도문으로 가는 길목에 두만강이 보였고, 남양역도 보였다. 북한에서 써 놓은 선전 문구도 보였다. 2시 30분쯤 도문에 도착했다. 북한과 이어진 도문대교가 있다. 가이드에 의하면 조선족은 하루 전에 신청하면 여권 없이도 여행증명서로 도문대교를 통해 2박 3일 정도는 북한을 다녀올 수 있다고 한다. 두만강을 끼고 있는 두만강광장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가이드에 의하면, 두만은 만주어에서 온 것으로 만물의 근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날씨가 좋아서 그런가. 중국 쪽에서는 강변을 따라서 산책길을 잘 만들어 놓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도 있었고,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냥 앉아서 이런 저런 구경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사람들의 휴식처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트 선착장으로 사용하는 유람선에 앉았다. 유람선에는 조용필이 부르는 한국 노래가 나왔다. 가이드가 약속대로 옥수수 막걸리 한통을 샀다. 1회용 종이컵 반 잔 정도를 마셨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막걸리이지만, 마실 만 했다. 홍수로 물이 불었다고는 하지만, 두만강의 강폭은 생각보다 좁았다. 압록강의 강폭이 더 넓었다.

 

두만강. 북한이 바로 지척이다. 강 건너가 바로 북한


  유람선에 오르는 사람에게 손을 흔들어, 같이 손을 흔들게 하고는 허락도 받지 않은 채 무조건 사진을 찍은 다음, 두만강 기념이라며 3000원씩에 팔았다. 웬일인지 내게는 사진을 팔러 오지 않았다. M이 내가 찍힌 사진을 보았는데 그리 잘 찍히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안 왔나 보다. 오면 사주려고 했는데…. 강 건너 북한 쪽에서는 사람을 볼 수 없었다. 북한 쪽의 산을 보면, 경사진 밭이 조성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산 위까지 경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상황인가 보다. 공원을 둘러보았다. 조선족들도 많이 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조선족 자치구라고는 하지만, 중국어가 더 우세하게 사용된다는 것이 느껴진다. 공원에 틀어 놓은 대형 TV에서는 우리말이 들리지 않았다. 가이드에게 물어 본 적이 있다. 자치주에서 중국어를 모르고도 살 수 있냐고? 조선족의 모국어는 조선어라고 한다. 조선어를 모르는 조선족은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대략 조선족의 3분의 1 정도만이 중국어에 능통하고, 또 3분의 1정도는 그럭저럭 중국어를 하고, 또 나머지 3분의 1 정도는 중국어를 모른다는 것이었다. 시골 할머니들은 중국어 못해도 그럭저럭 사실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어를 모르면 불편해 보였다. 자치주이기는 하지만, 조선족을 제외한 다른 민족들과 어울려 살려면 중국어를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두만강 표석  

 

도문 대교. 왼쪽이 북한. 오른쪽이 중국

 

  두만강이 국경이라고는 하지만, 압록강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 쪽에도 북한 쪽에도 철조망 같은 것은 볼 수 없었다. 마음만 먹으면 중국 사람들은 언제라도 북한으로 갈 수 있고, 북한 사람들도 언제라도 중국으로 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물이 별로 없는 때라던가 아니면 강이 얼었을 때라면 항상 가능할 것 같았다. 탈북자가 쉽게 중국으로 건너 올 수 있는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중국에서 강변에 철조망을 칠 이유는 없을 것 같았다. 잘사는 중국 사람들이 북한으로 월경해야 할 이유가 없다. 여권만 있으면 도문대교를 통해 합법적으로 갈 수 있는데, 굳이 불법 월경을 해야 할 이유가 없고, 따라서 철조망을 칠 이유가 없을 것이다. 탈북자가 그렇게 많은데 북한은 왜 철조망을 치지 않았을까? 방임하는 것인가? 중국과 사이가 좋아서? 집안의 압록강을 보면서도 그런 느낌이 들었지만, 북한을 경계한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3시 20분쯤 도문을 출발해서 봉오동 전적지를 찾아 갔다. 봉오동 전적지는 1920년 6월에 홍범도의 독립군이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곳이다. 봉오동 저수지에 기념비가 있다고 해서 찾아 갔지만, 기념비는 찾을 수 없었다. 공사 중으로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아쉬웠지만 그냥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봉오동5구구간대주둔지를 나타내는 표석뿐이었다. 연변조선족자치주 차원에서 좀 더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방안이 없었을까?

 

  

봉오동5구구간대주둔지를 나타내는 표석  

 

 

왼쪽으로 쭉 올라가면 전적비가 있다는데, 댐 공사 중이라 가볼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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