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용 주화

현용 주화 (3)

지족재 2021. 11. 1. 00:21

현용 주화 (3) - 롤(roll)과 관봉(官封)

 

새로 만든 주화를 50개씩 묶어 롤(roll)로 만든 다음, 500주는 20 롤씩, 100주와 50주는 40 롤씩, 10주는 50 롤씩 하나의 상자에 담아 보관한다. 업자들은 이 상자를 '상자 관봉'이라고 부른다. 1주와 5주는 500개씩 자루에 담아 보관했는데, 업자들은 이 자루를 '자루 관봉' 또는 '소 관봉'이라고 부른다. 이 둘을 간단히 '관봉'이라고 부른다. 본래 관봉(官封)은 정부에서 돈을 발행하여 (상자나 자루에 담아) 도장을 찍어 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아직 상자 관봉이나 자루 관봉의 실물을 본 적은 없다. 롤이야 많이 봤지만. 그런데 요즘에는 관봉이 나오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사진으로 보면 관봉에 정부 기관인 '한국은행'이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조폐공사에서 새로 만든 주화를 50개씩 묶은 롤의 표지(간단히, 롤지, roll紙)에도 '한국은행'이 적혀 있다. 돈을 발행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정부기관이 바로 한국은행이기 때문이다. 조폐공사가 돈을 발행하는 것이 아니다. 비록 조폐공사가 돈을 만들어 내기는 하지만, 발행하는 곳은 한국은행이다. 말하자면 조폐공사는 돈을 만드는 하청 공장이라고 할 수 있다. 민트 세트에도 당연히 '한국은행'이라고 적혀 있고. 조폐공사와 한국은행은 동일 기관이 아니다.

 

미사용 주화는 어떤 것인가? 조폐공사에서 특별하게 만든 프루프화는 물론이고, 조폐공사에서 출시한 민트에 있는 주화는 일단 완미로 볼 수 있다. (프루프화는 아주 특별한 것이라는 점에서 아마추어 수집가의 입장에서 프루프화를 더 이상 거론하고 싶지 않다.) 민트나 관봉 그대로, 또는 관봉을 해체한 롤 속의 주화는 모두 미사용에 해당한다. 그러나 롤이나 자루 관봉에서는 주화끼리 긁히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에 (즉 bag mark가 있기 때문에) 민트에 들어 있는 주화보다는 상대적으로 상태가 나쁘다. 특히 자루 관봉에 들어 있는 주화의 상태가 더 나쁘다고 할 수 있다.

 

민트나 롤 또는 자루 관봉을 해체해서 그 안에 있는 주화를 꺼내 물건을 사고파는 데 사용한다면 그 주화는 당연히 사용제가 된다. (그러나 주화 수집가라면 결코 그렇게 무모한 일을 할 리가 없다. 일단 사용제가 되면 가격이 상당히 떨어지니까.) 수집가라면 민트나 롤 또는 자루 관봉을 해체해서 그 안에 있는 주화를 꺼낸다고 해도 그것을 시중에 유통시키는 것이 아니라 낱개로 잘 보관하게 된다. 업자의 경우에는 팔기 위해서, 업자가 아닌 수집가의 경우에는 다른 수집가와 교환하기 위해서 민트나 롤 또는 자루 관봉을 해체하기도 된다. 

 

민트나 롤 또는 자루 관봉을 해체해서 그 안에 있는 주화를 꺼내게 되면, 그것이 미사용이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냥 업자의 말을 믿는 수밖에 없다. 상급의 극미품을 민트나 롤 또는 자루 관봉 해체품이라고 말해도 그것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래서 아예 NGC 등의 인증을 받은 grading 주화만 고집하는 수집가도 있다. 이들은 대개  (전문적, 직업적인) professional 수집가라고 할 수 있다. 주화 수집 분야에 관한 깊은 지식은 물론이고 상당한 재력이 뒷받침되어야 프로 수집가가 될 수 있다. 업자의 경우는 professional 수집가이면서 동시에 commercial 수집가라고 할 수 있다. 

 

취미 수준의 주화 수집이라면 미사용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사용제를 모으는 것도 즐거움을 줄 수 있다.  사용제부터 시작해서 미사용으로 옮겨 가면서 천천히 프로 수집가의 길을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프로 수집가의 길을 갈 계획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기에는 나이가 좀 많다. 오로지 네 종류의 현용 주화에만 관심이 있고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 그러니 프로 수집가가 되기는 틀렸다. 그래서 그냥 사용제 수집에 만족하고 있다. 그렇다고 미사용 주화가 하나도 없다는 것은 아니고... 사용제가 없으면 미사용이라도 구입해서 연도별로 채워야 하니까...

 

수집가들이 롤을 구하는 첫째 방법은 한국은행 본점 또는 지점을 방문하여 액면가로 교환하는 것이다. 500주 1 롤의 액면가는 25000원이므로, 25000원을 내고 1 롤과 교환하면 된다. 1인당 1일에 교환할 수 있는 수량이 정해져 있다. 한국은행 지점이 가까운 거리에 있다면 나도 그렇게 해 볼 텐데... 둘째 방법은 업자로부터 구입하는 것이다. 어느 해에 발행되었느냐에 따라 가격에 차이가 있다. 2017년 500주 1 롤은 3~4만 원 정도이지만 2014년 50주 1 롤은 150만 원에 거래된다. 2017년 500주는 1억 1천만 개가 발행되었지만, 2014년 50주는 1백만 개만 발행되었기 때문이다. 

 

어느 해의 발행량이 미리 고지되는 것은 아니고 그 해가 지난 다음에 알려진다. 그러니 업자도 그 발행량을 미리 알고 롤을 비축해두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그런 일에 오래 종사하다 보면 어느 정도 감이 생기지는 않을까? 2014년 50주 1 롤의 액면가는 2500원이다. 2014년 50주 10 롤을 가지고 있다면 1500만 원이고, 만약 40 롤의 1 관봉을 가지고 있다면 6000만 원이 된다. 한국은행에서도 이러한 점 때문에 교환 정책을 바꾼다고 하는 것 같다. 업자들이 들으면 슬픈 이야기겠지만 나와는 무관하다. 150만 원에 2014년 50주 1 롤을 살 생각은 전혀 없다.